안녕하세요, 하세소취입니다.
오늘은 제 마음속 깊은 곳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‘첫사랑’ 같은 게임 이야기를 꺼내보려 합니다. 화려한 그래픽이나 완벽한 편의성은 없었지만, 그 어떤 게임보다 사람 냄새가 짙었던 시절.
바로 2000년대 초반 우리들의 밤을 하얗게 지새우게 했던 **<다크 에이지 오브 카멜롯(DAoC)>, 일명 ‘다옥’**입니다.
🔫 냉혹한 총잡이에서, 낭만의 바드(Bard)로
사실 저는 이 게임을 접하기 전까지만 해도 온라인 FPS인 ‘카운터 스트라이크’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. 총구가 불을 뿜고 승패가 칼같이 갈리는 냉정한 세계였죠.
그러다 우연히 접하게 된 다옥은 제게 **’생애 첫 MMORPG’**라는 타이틀과 함께 전혀 다른 세상을 열어주었습니다.
제가 선택한 곳은 아름다운 자연이 숨 쉬는 ‘하이버니아(Hibernia)’ 렐름, 그리고 제 분신은 노래를 부르는 **’바드(Bard)’**였습니다. 단순히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을 넘어, 길드원들과 끈끈하게 이어져 있다는 그 ‘유대감’은 FPS에서는 결코 느껴보지 못한 따뜻함이었습니다.
💾 “드르륵…” 적군을 알리는 하드디스크 레이더
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, 혹시 컴퓨터 본체에서 나는 “드륵, 드드륵” 소리를 기억하시나요?
지금이야 SSD가 기본이지만, 그때는 모두가 투박한 하드디스크를 쓰던 시절이었습니다. 광활한 하이버니아의 초원을 제 바드의 ‘스피드송’을 켜고 신나게 질주하다 보면, 갑자기 컴퓨터에서 하드디스크 읽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곤 했습니다.
“전방에 적 렐름 파티 등장이요!”
그건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가장 확실한 적군 경보 장치였습니다. 방대한 캐릭터 데이터를 로딩하느라 비명을 지르는 하드디스크 소리. 그 소리에 맞춰 파티원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전투 태세를 갖추던 그 긴장감은 눈보다 귀가 먼저 반응하던 그 시절 최고의 짜릿함이었습니다.
⚔️ 렐름전(RvR)의 전율과 낭만의 레이드
만렙을 달성하고 뛰어든 렐름전(RvR), 이른바 ‘쟁’은 다옥의 꽃이었습니다.
- 다크니스 폴스: 적 렐름의 성을 공략해 성물(렐릭)을 뺏어오면 열리던 전설의 던전. 그곳에 입장하기 위해 우리는 치열하게 싸웠습니다.
- 드래곤 레이드: 이름도 가물가물한 깊은 던전 속, 거대한 용을 잡기 위해 하이버니아의 모든 형제자매가 모여 대규모 레이드를 떠나던 가슴 웅장해지던 순간들.
물론 매일 전투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. 치열한 사냥 끝에 쉬면서 잡담을 나누고, 하이버니아 특유의 아름답고 몽환적인 자연 풍경을 바라보며 힐링하던 그 소소한 시간들이 참 좋았습니다.
🕯️ 가상 현실을 넘어선 진짜 ‘사람’ 이야기
다옥을 추억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, 가슴 먹먹한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.
당시 하이버니아 렐름의 한 플레이어분이 백혈병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. 현실에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이였지만, 그 세계 안에서 우리는 모두 친구이자 전우였죠.
그때 다옥 운영진이 보여준 행보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. 고인을 기리기 위해 게임 내 광장에 추모 동상을 세워주었고, 모든 하이버니아 유저들이 그곳에 모여 진심으로 애도를 표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.
유저도, 운영진도, 게임이라는 가상의 벽을 넘어 ‘사람’으로 하나가 되었던 진정한 낭만의 시대였습니다.
🍂 마치며…
더 이상 유저는 늘지 않고 운영사의 사정도 어려워지며, 다옥은 결국 서비스 종료라는 이름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.
이후 ‘월드 오브 워크래프트(WoW)’ 같은 훌륭한 명작 MMORPG들도 즐겨봤지만, 감히 말하건대 다옥만큼 제 가슴을 뛰게 하고 애틋하게 만들었던 게임은 없었습니다.
편리함과 화려함 대신, 조금은 불편해도 서로의 온기를 짙게 느낄 수 있었던 시절. 유독 그 투박한 하드디스크 소리와 하이버니아의 푸른 숲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밤입니다.
여러분에게도 영원히 잊지 못할 **’인생 게임’**이 있으신가요?